시계 3개를 들고 예지동 시계골목을 찾았다. 스위스 브랜드 ALLPASS, 이태리 브랜드 아르마니(ARMANI), 스위스 브랜드 오메가(OMEGA) ... 이렇게 셋! 갑작스레 3개의 시계가 워치콜렉션에 추가되었다. 하지만 이 3개의 시계는 모두 정상 작동하질 않았다. ALLPASS와 ARMANI는 쿼츠시계였고 배터리가 모두 방전되어 시계바늘이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나머지 하나인 오메가는 오랜 세월 보관만 이루어져 내부 오일이 고착되었는지 이 역시도 바늘의 움직임을 볼 수 없었다. 점검 및 수리를 결심했고 2019년 설연휴를 이용하기로 했다.
언제부턴가 예지동을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주말엔 평일보다 더 힘겨운 일이 약속으로 자리잡고 있었기에 어딜 갈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마침 두가지 조건이 예지동 시계골목을 향하게 했는데, 갑작스런 3개의 시계습득이 하나이고, 과거보다는 긴 연휴기간이 두번째다.
어림짐작으로 1/10정도만 가게를 오픈한 상태다. 눈에 드는 간판의 공통점은 '명품시계수리', '롤렉스', '오메가'였고,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진열된 시계들은 대부분 메이커를 알 수없는 조악한 중국산 시계들이었으며, 간혹 이름조차 확인하기도 전에 '나 명품이야~'하고 소리치듯 눈에 확!드는 제품들도 있었다. 진품 가품의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를 제외한 가족 셋은 시계에 별 관심이 없던 터라 그나마도 한자리에 퍼질고앉아 마음놓고 구경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될 수 없었다.
눈요기하느라 잠시 잊었던 시계점검 목적을 떠올리며 골목길에서 가장 커다란 시계점을 선정, ALLPASS와 ARMANI의 배터리 점검을 요구, 개당 5천원씩에 합의, 그리고 시계줄을 줄여달라 부탁! 하지만 시계줄을 줄이는 과정에서 나는 심한 스트레스로 담배를 두번이나 피웠다. 평생 공구관련 일을 하다보니 공구를 만지는 모습을 잠시만 봐도 그 사람의 숙련정도를 알 수 있다. 배터리 교체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숙련되지못한 시계공의 손길이 매우 눈에 거슬렸으며, 작업이 완료되기전에 흐트러진 시계를 회수하여 다른 곳으로 가고싶을 정도였다. 완성된 시계줄은 보니 참았던 스트레스가 온몸을 급습해버렸다. 시계줄 정렬이 잘못되어 일자가 아닌 꺽인 형태가 되었으며, 스크레퍼로 벌린 자국과 억지로 플라이어로 오므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음의 순서는 오메가 씨마스터의 점검 및 수리였는데 주머니에서 꺼내고자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질 않았다.
예지동 시계골목 관련하여 소개글과 방문기가 여럿 있어 읽어봤고, 그래서 이곳을 찾았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론 하나를 가지고 전체를 평가함은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생각되지만 ...... 그래도 이건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구만 있으면 나도 할수 있는 일을 ... 쩝!
예지동을 탐방한지 3일이 지났다. 다시 시계를 들고 회현동 워치닥터(Watch Doctor)를 찾았다. 실은 여기서부터가 본론이다. 예지동 탐방전에 이미 워치닥터를 알고 있었으나, 긴 연휴로 인해 좀더 빠른 점검 및 수리를 원했던 성급한 나의 성격으로 인해 생긴 일이었으며, 워치닥터를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을 말하고자 함이었는데, 잡설이 길었다.
능수능란, 고도로 숙련된, 전문성 ..... 시계를 들고 여기까지 오게된 경위?를 설명하는 중, 백케이스를 열어 문제점을 찾는 워치닥터 김대중 대표의 손길을 보며 느꼈던 단어들이다. 예지동에서 느낄 수 없었던 손길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사연(이 사연은 따로 포스팅할 예정)을 간직한 오메가 빈티지 씨마스터 시계를 수리의뢰함에 추호도 망설임이 없었을 만큼 만족도가 높은 손길이었다. 사진촬영을 허락받은 것이 이 즈음이며, 사진을 찍고자하는 마음은 아마도 워치닥터의 만족도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벽면에 인상적인 그림이 크게 자리했다. 잘은 모르지만 무브먼트의 구성도, 조립도인가 보다. 취미로 시계를 시작한 지가 약 3년이 넘었다. 최근에는 시계제작에 관심이 있어 그에 따른 자료를 찾아보고 있는데, 설명이 곁들여진 영상이나 도면, 글이 좀처럼 눈에 띄질 않아 시작을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 그림이 시작이 될지도 .....
원하는 요구사항이 정리되었고,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른 시간 때문인지 흰색의 쇼케이스에는 아무것도 자리잡지 않았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 다들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지 다소 좁은 통로에는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 주변에는 돈을 판매하는 곳이 여럿 있다. 이 또한 관심대상이지만 이 날은 참기로 했다.
회현지하쇼핑센터는 고교시절 회현동에 사는 친구를 따라 한번 갔던 이후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좋아하던 것을 많이 좋아했던, 공통관심사가 비슷했던 그 친구도 세월이 지난 이 시점에 이 곳을 찾는다면, 아마도 통로와 통로 사이를 분주히 헤매일 것이다. 시간내어 꼭 한번 다시 찾아 오고 싶은 곳이며, 그 때에는 주머니에 돈좀 두둑히 넣어와야겠다. ㅎㅎ
이곳은 서울 중구 소공로58 회현지하쇼핑센터 가-5호 '명품시계수리점 워치닥터(WATCH DOCTOR)'다.
김대중! 한번 들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워치닥터 대표의 명함에 밖힌 이름이다. 나쁜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름이다. 이름 때문에 금방 탄로가 나고, 쉽게 체포될 것 같은 이름이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여 이름만 대면 다 안다는 대기업에 입사하였으나, 단명의 직장생활에 힘들어하는 선배들을 보고, 가진 돈 다 싸들고 스위스로 떠나 스위스 시계학교 워스텝(WOSTEP)에 입학하여 시계인생을 걷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좀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나의 요구사항이 오메가 점검 및 수리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예지동에서 수리했던 또 다른 시계를 들이대며 '이것두 좀 봐주세요~'했기에 분주했던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물어볼 수가 없었다.
"빈티지 시계는 빈티지스럽게 차세요~" 그의 말한마디에 원래의 계획은 변경되었다. 원래 계획은 신품같은 시계로 둔갑시키는 것이었다. 즉, 내부는 내부대로 신품처럼 오버홀하고, 외부는 번쩍 번쩍하게 폴리싱마감하여, 마치 상자에서 언박싱하는 느낌으로 시작하고자 하였으나, '빈티지는 빈티지답게!'라는 그의 말에 "음....... "하고 수긍하고 말았다. 폴리싱은 제외하기로 결정! 글라스도 새것으로 교체하고자 했으나, 지금의 글라스가 오메가 정품이고, 흠집도 깊지 않으니 간단한 폴리싱작업으로 복구가 가능하다고하여 이 또한 원래 계획에서 빼버렸다. 의도와 다르게 계획했던 수리비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익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의 바보같은 영업정책?은 도리어 묘한 신뢰를 준다.
위 사진은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핸즈정렬 작업중 - 초침과 분침이 서로 닿아 1분에 한번씩 시계가 멈추던 것을 분해하여 핸즈를 재정렬하고 조립했다. 공짜로!
2019년 2월 9일 현재, 아직 맡겼던 오메가 씨마스터를 받지 못했다. 오버홀이 끝나면 연락주기로 했다. 이 기간이 꽤 길게 느껴지지만 그리고 언제 연락이 올지도 모르지만, 나름 이 기간을 즐기고 있다. 마치 주문한 상품의 택배도착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 기다림의 바탕에는 워치닥터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내최초의 컨테이너박스 쇼핑몰 - 건대 커먼그라운드 COMMON GROUND (0) | 2015.12.31 |
---|---|
독산동 금천예술공장 (0) | 2015.12.13 |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 - 시간공장(TIME FACTORY) (0) | 2015.10.03 |
[한국의 미] 북촌 종이나무갤러리에서 담아온 빛 (0) | 2015.09.09 |
동인천 배다리문화마을과 아벨서점 (0) | 2015.08.16 |
댓글